이기적 유전자가 퍽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갖고 글을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 자체도 꽤 인상적이어서 이 사람이 쓴 걸 세 권이나 읽었다. 그 결과물들을 긁어모아 보았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이기적 유전자이다. 두 글은 구조가 거의 같다. 독서기록장에 먼저 느낀 대로 다 쓰고, 그걸 토대로 과학독후감 대회에 낼 글을 쓴 것이다. 독서기록장에 못 쓴 감상을 과학독후감에 때려박은 느낌인데, 그러다보니 후자는 불쏘시개 정도의 번잡함을 자아낸다.
세번째와 네번째는 각각 만들어진 신과 확장된 표현형이다. 어쩌다가 자극적인 제목과 익숙한 저자명 때문에 전자를 읽었고, 후자의 책을 읽은 데는 전자를 읽으면서 저자에 매료된 영향도 클 것이다.
마지막은 다시 이기적 유전자로 끝맺는데, 이건 인문학세미나에 제출하려고 쓴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상 독자도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너도 이기적 유전자 읽을 수 있다!"는 어조의 글이다. 또 하나의 명확한 동기이자 목적도 있는데, 그것이 절대로 모 국어교사의 참을 수 없는 오해를 지적하기 위함은 아니다.
책 제목 | 이기적 유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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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리처드 도킨스 |
이 책의 존재를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겨울방학 때 추천도서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서문과 목차를 읽어보니 진화론에 관한 내용이었다. 난 평소에 사람은 이타적인 쪽일지 이기적인 쪽일지 궁금했다. 마침 이책에서는 생물의 이타성과 이기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겨울방학 때 이기적 유전자에 처음 도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시도는 실패했다.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된다. 나는 그 때 7장 정도 읽다가 그만뒀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유전자와 진화의 원리에 대해 일반적인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DNA와 같은 복잡한 자기복제자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신기했다. 그러나 5장부터는 그렇게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지는 않았다. 유전자의 자연선택 원리에 의해 진화한 행동방식들을 서술하는데, 이것은 그저 자연에서 관찰되는 것이 실제로 이기적유전자론으로 설명가능하다는 예시들에 불과하다. ESS와 근친도 계산과 같은 흥미로운 개념도 나오긴한다. 특히, 공이 미분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떨어지는 것과 같이 생존기계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근친도 계산을 한다는 비유는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뒤의 반복되는 예시가 주는 지루함이 컸기에 결국 첫 시도에서는 중간에 책을 덮게 되었다.
얼마전에 두번째 시도를 했다. 어떤 책을 앞부분만 읽고 뒷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대 나는 전번에 완독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10장까지는 지루한 내용들이 나온다. 그러나 11장에서 제시하는 것은 매우 새롭다. 11장의 주제는 문화의 전달 단위인 '밈(meme)'에 관한 것이다. 저자의 동료 험프리는 밈은 비유로서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고 말한다. 생물의 정의는 앞에서도 읽은 바 있지만 지구의 유기체가 아닌 다른 생물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의 의미는 또 달랐다. 12장을 읽고 나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13장까지 읽은 뒤에는 충격을 받았다. 12장에서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쓸 수 있는 여러 전략을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전략의 조건을 찾아낸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마음씨 좋은 놈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난 이것을 일반적으로 성선설이 성립한다고 해석하고 안도하였다. 13장에서는 유전자와 생물 개체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 또한 앞에서 나오지만 그 뜻을 알게 되자 정말 충격적이었다. 어떤 말을 아는 것과 그 뜻을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책을 다 읽자 참 뿌듯하였다. 이런 책이 세상이 많이 있을 거라 믿는다.
겨울방학 때 학교에서 나눠준 추천도서목록에서 이기적 유전자란 제목을 처음 보았다. 나는 평소에 사람 혹은 생명체가 일반적으로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에 대해 궁금했다. 그리고 그것을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생각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된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자연적으로 DNA 분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다. 나는 이것이 창조론에 대한 일종의 논리적인 반박으로 보였다. 5장부터는 ESS와 근친도 개념을 사용하여 생물 개체의 여러가지 행동이 어떻게 진화하였는지 설명한다. 이 부분이 너무 지루해서 난 이 책을 반 정도 읽다가 포기하였다.
난 책을 읽다 말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간고사 뒤의 첫 책을 <이기적 유전자>로 정하였다. 10장까지도 썩 인상깊은 내용은 없었다. 11장부터 다시 재미있어졌다. 11장은 문화의 유전 단위인 ‘밈’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동료의 말을 인용하여 밈은 비유로써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명체를 자기복제를 통해 자손을 퍼뜨리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밈은 생명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이 문화라는 것을 만든 후로 더 이상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가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타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아닌 정말로 ‘이타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 물음에 대한 첫번째 답이 되었다.
12장과 13장은 내게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다. 경제학자 액셀로드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아보았다. 그 결과는 낙천적이다. 먼저 공격하지 않고, 자꾸 복수하지 않는 전략이 승리한다. 한마디로 ‘마음씨 좋은 놈’이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여러 상황에도 적용된다. 즉 우리는 ‘마음씨 좋은 놈’으로 진화한다. 이것이 책에서 주는 두번째 답이다. 난 이 부분을 읽고 크게 기뻐했다. 정확한 계산을 통해서 확실하게 ‘이타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13장에서는 책의 앞부분에서 했던 말이 또 나온다. 유전자와 생물 개체를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13장을 읽으면서 내가 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유전자와 생물 개체는 그저 언어 상으로 별개인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유전자와 생물 개체는 따로 노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정말 큰 충격을 주었다. 어떤 문장을 읽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완전히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난 보통 책이나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경향이 있다. 어떤 책을 읽었을 때 그 책을 지적하는 것을 들은 후에야 그것이 문제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란 책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를 덜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초판과 개정판의 내용이 같다. 즉, 30년이 넘도록 원래의 내용에 수정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알게 되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다. 이런 책이 세상에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행운을 더 많이 찾아나서야겠다.
책 제목 | 만들어진 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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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리처드 도킨스 |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난 신을 믿지 않았다. 세상은 신 없이도 잘 도랑간다. 그러나 종교는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신이 있다고 믿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쉽게 찾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종종 종교의 이름으로 끔찍한 살육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느 집단에나 있는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종교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런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내가 생각하는 신의 역할은 어린 아이가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에 따라 가치판단하는 것과 비슷했다. 우린 신 없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여하고 타당한 기준에 따라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종교가 저지르는 잔혹한 짓들은 극단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온건한 종교에서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맹목적인 신앙을 그대로 실천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종교는 확실한 악이고, 언젠가 지구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 책에서는 내가 인정하기 어려운 것들도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한 가지는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것이었다. 난 그전까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내 근거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타다한 근거를 들어 지지했고 난 결국 거기에 동조하게 됐다. 이건 내가 전에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다. 그때 난 안전에 대한 얕은 근거로 원자력 발전을 줄여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충분한 자료조사를 하고서는 원자력 발전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 이후에 방법서설을 읽고 논리력이 향상되었다느니하는 소리를 했는데 기분 뿐이었다. 지금도 내 주장에 근거를 대려하면 조리있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글 쓸 때도 30분은 고민하다가 가가스로 첫 글자를 쓴다. 내 생각을 유창하게 전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책 몇 권 읽는다고 큰 발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러 주제에 대해 진지한 글을 써보는 것을 병행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책 제목 | 확장된 표현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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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리처드 도킨스 |
확장된 표현형. 리처드 도킨스가 쓴 책이다. 이것으로 내가 읽은 리처드 도킨스의 책만 세 권째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은 매력적이다. 특히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그러하다. 이기적 유전자는 수많은 사례로 집단 선택을 초박살냈고, 만들어진 신에서는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반론에 재반박하며 신의 존재를 지웠다. 자신의 주장에 어떠한 빈틈도 남기지 않는 그의 책들은 읽으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확장된 표현형은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뒤집는 '확장된 표현형'을 선보이는 책이다. 이 책의 구조도 흥미롭다. 총 1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10장까지는 '확장된 표현형'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천천히 사고를 확장하며 '확장된 표현형'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리고 11장부터 '확장된 표현형'을 받아들인다. 이는 상당히 충격적인 개념이지만, 한 발짝씩 생각을 넓힌 독자에게는 비교적 가벼운 발상의 전환이다. 마치 데워지는 우유 속의 개구리가 서서히 자기도 모르게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확장된 표현형'이 응당 그렇게 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나 또한 이런 신기한 경험을 했을 테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지 않았더라면….
'확장된 표현형'은 이기적 유전자의 '유전자의 긴 팔'이라는 장에서도 소개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 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 책에서는 계속해서 '유기체와 유전자는 별개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그렇구나' 하며 계속 읽었다. 하지만 '유전자의 긴 팔'이란 문제의 장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난 이 말의 뜻을 털끝만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된 경험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같은 개념으로 뒤통수를 두 번 맞을 수는 없는 법이다. 확장된 표현형은 그 '유전자의 긴 팔'의 내용을 대주제로 쓴 책이다. 하지만 난 핵심 개념을 이미 접하였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얘기한 구조가 책을 읽는 내내 의식됐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확장된 표현형은 다소 밋밋했다. 이 책의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꼭 이기적 유전자를 읽지 않은 누군가가 확장된 표현형을 읽고 감상을 들려주었으면 한다. 내가 기대한 그런 충격을 받았을지 궁금하다.
또 이기적 유전자다. 세 번째 우려먹고 있다. 가능하면 다른 책을 읽고 새 서평을 쓰는 게 나한테는 유익하겠지만, 도서 목록에 이기적 유전자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좀처럼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누구나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은 책이지만 높은 진입 장벽이 가로막고 있고 그로 인해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고 있다. 인문학 세미나 친구들만은 꼭 이 책의 매력에 푹 빠지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하는 서평을 “또” 쓴다.
책 소개는 건너뛰고 그다음 문단부터 읽어도 된다…라고 하면 더 읽고 싶겠지만 진짜 건너뛰어도 된다. 책 소개는 원래 안 쓰려고 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책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생물의 진화를 유전자 관점에서 풀어 쓴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리처드 도킨스가 밝힌 내용이라기보단, 이기적유전자론의 주요 개념과 그간의 논쟁을 담은 책이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유전자와 진화의 기본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5장부터 10장까지는, 후술하겠지만 다소 지루한 내용으로, 자연에서 나타나는 생물의 행동, 자녀 계획, 세대 간 갈등, 성별, 사회성에 대해 진화적 안정상태(ESS)나 근친도 등의 개념을 곁들여 설명한다. 11장부터 13장까지는 개정을 거듭하며 덧붙여진 내용으로, 11장은 문화적 복제자인 밈에 대해 소개하고, 12장에서는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협조’과 ‘적대’라는 두 전략의 진화 양상을 살펴본다. 선악의 대립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13장의 제목은 ‘유전자의 긴 팔’인데, 여기에서는 책 하나 분량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을 수 있으며 리처드 도킨스의 다른 저서인 확장된 표현형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나는 책에서 옮긴 이의 말, 서문, 에필로그를 모두 읽는 습관이 있다. 여기에 책과 관련해 저자가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개정을 거듭하면서 붙여진 서문이 4편이나 있고 최신판인 40주년 기념판에는 마지막에 에필로그도 있으니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이 쉽지는 않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의 백수 시절에 이 책에 처음 도전했다. 첫 도전에서는 반 정도 읽다가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서 포기했다. 지루하다면 지루한 책이긴 하다. 책의 내용이 각각의 현상에 이기적유전자론을 적용해 아주 세세하게 근본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멋모르고 읽었을 때는 똑같은 이야기를 두세 개도 아니고 6가지 이야기에 아주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자세하게 풀어가는 것 같다. 그걸 한 자씩 읽고 있는 대부분 독자에게는 읽기가 고역이다. 혹여나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더 읽기가 싫어져도 정상이라는 말이다. 나처럼 독서에 유별난 도전정신을 가진 게 아니라면 그만둘 만도 하다.
다만 말하고 싶은 건, 그 도전정신을 심어준 게 바로 이 이기적 유전자라는 것이다. 위에서 나는 처음에 반만 읽고 포기했다고 했다. 그럼 난 책을 반쪽만 읽고서 뻔뻔하게 세 번씩이나 서평을 쓰고 있는 건가? 물론 아니다. 개학을 하고 몇 달 뒤에 난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책을 읽다 포기한 게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어떻게 꾸역꾸역 읽고 나니 어라? 딱 경계가 나뉘면서 책이 흥미로워졌다. 그 경계는 바로 11장에 들어가는 부분이다. 지적 충격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지만(이 서평의 목적은 당신이 이기적 유전자를 읽게 하는 것이다), 난 두 번째 도전에 완독하고 나선 첫 번째 때의 포기를 후회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뒤쪽에 꼭꼭 숨겨뒀단 말인가? 최신판 이기적 유전자는 총 열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열 개의 장은 초판에 실린 것이고, 마지막 세 장은 개정판을 거치며 추가된 것이다. “경계” 뒤로는 개정판에 추가된 내용이다 보니,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꼭 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쓴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신선한 내용이 들어가게 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스스로 저주에 걸린 것 같다. 어떤 책이든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만 하는 저주에 걸린 것이다. 중간에 그만두면 뒤쪽에 숨겨놓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뺏기는 것만 같다. 이기적 유전자는 그만큼 충격적인 책이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혹시 읽다가 지루하면 건너뛰고 11장부터!
이 책은 왜 이렇게 지루하게 쓰였을까? 물론, 번역이 개떡 같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책 내용 자체도 별로 안 궁금한 이야기, 소위 TMI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 그 이유를 리처드 도킨스의 다른 책인 〈만들어진 신〉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관계없이, 두 책의 구조는 유사점을 갖고 있다. 바로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신 이야기를 좀 하겠다. 리처드 도킨스는 아무래도 종교를 참 지독하게 싫어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종교가 그 어떤 순기능도 담당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이러이러한 면은 종교만의 순기능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리처드 도킨스는 이미 그에 대한 반박을 다 준비해놓았다. 지금 난 책의 극단적인 주장보다도 그 빈틈없는 구성이 기억에 더 남는다.
이기적 유전자도 어떤 면에서 보면 집단선택설의 대항마로 이기적유전자론을 주장하는 책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의 다소 지루한 구성은 그 어떤 빈틈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논쟁을 책 안에서 종식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리처드 도킨스, 참 지독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지독한 방식은 학자의 태도로서는 존경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이 책은 제목 때문에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성악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주장을 하는 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 각 출판사 서평조차 그런다고 저자가 직접 밝히고 있다. 저자 자신도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숱한 노력을 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다른 책에서는 이 오해를 푸는 것으로 시작하기도 할 정도니 말 다했다. 저자가 그렇게까지 하는데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겠지만,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생명이 이기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에 싫증이 나서 잠깐 이야기를 해야겠다.
먼저 간단한 생명과학 이야기를 해야겠다. 모든 생명체는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유전자를 물려준다. 이 유전자 때문에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구체적으로 이 ‘유전자’라는 것은 DNA라는 복잡한 분자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과 마음은 부모가 물려준 ‘DNA’로 이루어져 있는가? 엄밀히 말하면 아니다. DNA는 그 안에 담긴 몸과 마음을 이루는 기본적인 정보만 해석될 뿐이다. 이 DNA라는 설명서에 따라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단백질이 모여서 조직이 되며, 조직이 모여서 몸을 이룬다. 특히 신경 조직이나 호르몬계 조직에 대한 설명서는 마음의 토대에 대한 설명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유전자가 표현하는 몸의 정보를 ‘형질’이라고 한다.
이제 오해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사람들이 하는 오해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이 생물의 이타성은 도태되고 이기성만이 살아남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제목을 잘 뜯어보자. Selfish Gene. 이기적인 유전자. ‘이기적인’이 수식어이고, ‘유전자’가 피수식어다. 엄밀히 말해 이기적인 것은 유전자 그 자체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설명했듯, 유전자는 구체적으로는 DNA라는 ‘물질’이다. 이기적인 것은 그 ‘물질’이다. 그리고 생물의 이기성은 DNA가 담은 정보가 나타내는 것, 즉 ‘형질’이다. 이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보이는가?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만 그 유전자가 나타내는 형질도 그럴까? 글쎄… 유전자가 나타내는 형질은 이기성일 수도 있고 이타성일 수도 있다. 사실은 이기성을 표현하는 유전자와 이타성을 표현하는 유전자가 모두 있다. 하지만 두 유전자는 한 자리를 놓고 다퉈야 한다. 이 때문에 상대의 자리를 둘 중에 더 ‘이기적인 유전자’만 살아남는다. 그게 이기성 유전자가 될 수도 있고, 이타성 유전자가 될 수도 있다.
쓰다 보니까 리처드 도킨스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건지 알겠다. 간단히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여기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유전자’가 이기적인 것과 그 유전자를 가진 ‘생물’이 이기적인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제12장이 제목처럼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 한다”고 직접 이 오해를 타파하고 있으니 그 부분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서평의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읽기 힘들면 5장~10장은 건너뛰고 나머지만 읽어도 될 것 같다. 둘째, 리처드 도킨스의 빈틈없는 논리력을 본받자. 셋째, 제~발 이기적 유전자 갖고 ‘우리의 근본적인 이기성’ 운운하지 말자. 이렇게 써 놓고 이젠 3학년이란 사실을 떠올리니 꼰대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게 다~ 후배들 좋은 책 읽으라고 하는 얘기니까 들어주면 그랜절 올리겠다.
작년엔 사정이 있어 인문학 세미나 신청을 안 했지만 2학기 때 폐지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 다시 인문학 세미나를 시작하겠다고 해주신 장문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수준 높은 인문학세미나 사람들은 언젠가 이기적 유전자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는 말로 서평을 마친다.
앉은 자리에서 휘리릭 쓴 것을 그대로 다 옮겼다. 특히 독서기록장에 기록된 것들은 대개 그렇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솔직하게 다 싣다 보니 불쏘시개를 몇 조각 넣게 되었는데, 너그럽게 봐주길 바란다.
만들어진 신에 관해서는 좀 얘기를 하고 가야겠다. 저 글을 읽으니 내 귀(아니 각막인가?)가 얼마나 얇은지 알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냉정을 되찾고 생각해보면 역시 신은 그렇게 끔찍한 존재는 아니다. 다만 신도 한명한명이 진지한 고민을 해보았으면 싶을 따름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마따나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신을 믿고 있다고 믿는다
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모든 것은 진실 앞에 한번쯤 무릎꿇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