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이 쓴 떨림과 울림은 책 크기와 표지, 제목 모두 영락없는 시집이다. 과학도서를 찾는 사람의 눈에 띄기 힘든 책이다. 아마 도서관에 책들이 무작위로 섞여 있었다면 난 절대 이 책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책의 내용도 표지 디자인과 일맥상통한다. 현대 물리학은 모든 것을 파동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파동이란 떨림과 울림. 사람 사는 인생사도 서로에게 전하는 떨림과 울림. 그런 점에서 우리 삶은 물리의 연장선이다. 저자는 물리에서 감성을 찾으려 한다. 그는 누구를 위해 이런 책을 썼을까. 과학을 원하는 문과를 위한 것인가, 감성을 원하는 이과를 위한 것인가. 아마 둘 다일 테다. 시집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무심코 집은 책을 읽으면서 물리학에 빠지고, 도서분류 400번대를 헤매던 누군가는 시집이 이 사이에 왜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집은 책을 읽으며 감성을 즐겼을지 모른다. 그만큼 과학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책이었다. 여태까지 지적 욕구를 채우고자 자세하고 어려운 책을 주로 읽어온 나로서는 편하게 휴식처럼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프로그래밍을 할 때 가끔 코드에서 바둑 같은 면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코드의 구성에서 인생에 대한 상징적 성찰을 얻을 수 있다면 프로그래머에게 그만한 낭만이 없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것을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쓰며 이 물리학자는 잔잔한 위안을 얻었으리라.
물론 내가 낭만과 위안만을 얻고자 했다면 400번대를 헤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과학도서를 읽을 때마다 지적 충격을 갈망한다. 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충격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떨림과 울림은 무언가를 파고드는 책은 아니다. 반대로 현대 물리학의 각 부분을 조금씩 맛보게 하는데, 그러다 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이상야릇한 것은 ‘동일입자의 구분불가능성’이다.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개념들은 이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같다. 거시세계의 동전을 두 개 던지면 결과는 ‘앞앞’, ‘앞뒤’, ‘뒤앞’, ‘뒤뒤’ 이렇게 4가지다. 만약 미시세계의 전자 두 개를 던질 수 있다면 동전을 두 개 던지는 것과 같은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물리에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전자를 던질 때는 ‘앞뒤’와 ‘뒤앞’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결과는 3가지가 된다. 이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세계를 만드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다른 책을 찾아 읽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을 유도라도 하는 듯 떨림과 울림은 장 끝마다 책을 소개한다. 흥미진진한 문학이나 타 과학저술과 병렬로 전개되는 글을 읽으면 그 책에 대한 즐거운 호기심이 생긴다. 그렇게 다른 책을 읽으면 그다음에 읽을 책이 생기고…. 이것이 독서가 즐거운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세상엔 끝없는 연쇄를 이어갈 수 있을 만큼 많은 책이 있다.
책 제목 | 떨림과 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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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상욱 |
이 책으로 독후감대회에서 상을 탔다. 이 글은 독후감 상 탄 것에 대한 후기 혹은 고찰 정도가 되겠다.
내가 간혹 멋드러지는 문장은 쓸 줄 알지만 글 한 편 잘 써서 상타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 이유는 '독후감'이라는 형식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겠다. 독후감을 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책을 읽고 난 느낌이다. 하지만 웬만한 책이 아니고서야 글로 풀어낼 정도로 풍부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번 책 떨림과 울림으로 독후감을 쓸 때도 한 가지 주제로는 분량이 안 나와서 두 파트로 나누어 썼다. 그럼에도 수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이번에 읽었던 책은 정말 이례적으로 내 생각과 닮은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나'가 글에 등장했고 그것이 글에 색채를 부러넣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상을 탈 조건 중 하나가 내 생각과 내 삶을 담아내는 것인 걸 알았다.
서론이나 결론을 굳이 덧붙일 필요없이 완결된 글쓰기 경험이었다. 다만 독서기록장에 쓰인 깨달음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글만 읽어도 낭만이 철철 넘친다니, 저런 걸 쓴 과거의 나는 괴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저런 걸 쓰는 것이 더 즐거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모든 순간에 괴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나는 더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