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면서 독서 수행평가에도 써먹었다. 아래 3개의 독서노트는 읽으면서 중간중간 작성한 것으로, 마지막엔 출력하여 독서 수행평가에 제출하였다. 배우고 느낀 점은 상편을 다 읽은 뒤에 수행평가에 서술형으로 쓴 내용이다. 그 뒤에 상편을 읽고 쓴 서평 한 편, 상하편 통합 개정판을 읽고 쓴 서평 한 편이 이어진다.
읽은 날짜 | 10/14 ~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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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범위 | p.5 ~ p.196 |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를 설명하면서 에셔의 그림과 바흐의 음악을 곁들이는 책이다. 1장부터 5장까지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필요한 형식체계, 무정의 용어, 재귀 등의 개념을 한 장씩 할애하여 설명한다. 또한 의미와 형식의 사용에 있어서 주의점을 유클리드 기하학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평행선 공준은 다른 4개 공준에 비해 덜 직관적이어서 평행선 공준을 다른 4개 공준에서 유도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으나, 그것은 전혀 반대의 결과 — 평행선 공준을 부정하는 새로운 기하학을 만드는 결과를 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이론(성층화 이론)을 토론하는 행위 자체가 바로 이론에 대한 가장 심한 침해일 것이다.
이 문장에 따르면 어찌 볼 때 수학에서 모순이란 필연적인데, 이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괴델이 불완전성을 논하면서 모순을 없애는 방법도 설명해주리라 믿는다.
내게는 뛰어난 궤변가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논리적 전개는 합리적인 것 같지만 이상한 결론에 다다른다. 여기에서 의미와 형식체계의 혼란이 오류로써 개입했을 것이다. 합의되지 않은 공리를 무심결에 사용하고 인정하는 오류가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그 친구와 얘기할 때는 형식체계를 활용해서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해보고 싶다.
형식체계를 사용할 때 의미는 형식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유도되고, 형식에서 의미를 유도하는 것은 금지된다. 이것을 보면 사실은 형식이 실존하는 것이고 의미는 가상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발표 같은 걸 할 때 형식보다는 의미를 중시해서 발표할 때 긴장하여 잘 말하지 못하더라도 의미만 전달된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존하는 것은 형식이다. 형식을 더 고려하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읽은 날짜 | 10/18 ~ 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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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범위 | p.197 ~ p.354 |
텍스트는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의미는 텍스트에 있는가, 해석하는 사람에게 있는가? 책의 6장에서는 텍스트가 보편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음을 설명한다. 7장과 8장은 가장 근본적인 수학 체계인 명제와 자연수를 형식체계로 만든다. 9장에서는 일본 선불교와 괴델 수에 대해 설명한다. 괴델 수의 존재로 인해 모든 형식체계는 수론으로 변환될 수 있다. 한편 수론은 다시 하나의 형식체계이다.
TNT가 완전하다면, 수론의 전문가들은 원칙적으로 폐업해야 할 것이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그들의 영역의 어떤 문제도 순전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반박해주고 싶다. TNT가 완전하더라도 수학자들이 할 일은 남아있을 것이다. 기계적인 방식 — 알고리즘을 빠르게 계산하는 방법과 도구를 연구하거나 유의미한 정리들을 적용하는 방법을 찾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자가 너무 실용적인 연구자가 되는 것은 아쉬워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TNT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수학자들은 상상 속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로써 계속 존재할 것이다. 정말 다행인 일이다.
앞에서 재귀에 관한 설명을 왜 한 것인지 알겠다. 불완전성은 재귀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이 책은 철저히 미괄식인 것 같다. 혹은, 순차적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인가? 하나의 수학 정리의 증명을 보여주려 해서 필연적으로 그런 구조가 된 것 같다. 두괄식에 비해 답답할지 모르지만 미괄식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마치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마지막 문장을 읽을 즈음에는 앞의 설명들이 결말로 수렴하는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읽은 날짜 | 10/20 ~ 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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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범위 | p.354 ~ p.472 |
10장에서는 수많은 층위들로 인해 작은 원인들이 복잡하게 모여 뜻밖의 결과를 만드는 복잡계들을 보여준다. 날씨, 컴퓨터, 고체물리학 등이 그 예다. 특히 컴퓨터의 구조와 인공지능을 깊이 있게 설명한다. 11장에서는 뉴런들의 연결로 어떻게 정신이 발현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그들은 그 운영체제가 약 35명의 사용자까지는 아주 편하게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사용자가 생기면 … 느림보가 된다고 말했다. 나는 농담으로 맞장구를 쳤다. “에, 뭐, 쉽지 않겠어? 운영체제 안에 ‘35’라는 수가 저장된 자리를 찾아서 그 수를 ‘60’으로 바꾸면 되지 않나?”라고 했더니 모두가 다 웃었다. 물론, 그 농담의 핵심은 그런 저장된 자리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어서 재미있었던 농담이다. 또한 복잡한 층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농담 하나로 관통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 컴퓨터 과학 분야의 주제들도 많이 다루어지는데 저자가 프로그래밍과 연이 있는 사람인 듯하다.
수학을 알고 싶어 읽는 책에서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이 나오니 적잖이 당황했다. 뒤표지의 서평들이 이해됐다. 앞에서 나온 논리학, 철학 정도는 메타 수학자라면 충분히 연구할만한 주제지만 인지심리학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 나라면 그건 나의 영역이 아니라며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연구하는 것은 분야라기보다는 주제일 것이다. ‘불완전성 정리’라는 주제를 연구하기 때문에 ‘수학’이라는 분야를 넘어서까지 다루게 된다. 훌륭한 연구들은 다들 분야를 넘나드는 것 같다. 그런 훌륭한 연구자가 되고 싶다.
괴델, 에셔, 바흐 (상)은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를 전개하는 책이다. (하)편도 있지만 책을 구할 수 없어서 못 읽었다. 이 책은 가장 기본적인 형식체계를 소개하고 이로부터 무모순성, 완전성, 재귀, 무정의용어 등의 개념들을 설명한다. 또한 형식체계를 다룰 때에서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한 가지를 설명해도 지면을 아끼지 않아서 어렵거나 헷갈리지 않게 하는 점이 정말 친절한 책이다. 조금 뜬금없이 의미가 어디 있는지나 정신과 사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다 이어지는 내용이라서 뒤 내용을 궁금해하게 한다.
이 책을 읽고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중 두 가지만 꼽아보겠다.
첫째, 의미만큼 형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난 본래 의미만 전달될 수 있다면 형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발표를 준비할 때에는 발표 내용에 집중하지, 발표 자료의 심미성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외모를 가꾸는 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형식체계를 다룰 때는 형식에서 수동적으로 의미가 나온다. 현실도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결국 의미를 매개하기 위해 서로 오가는 것은 들리는 말과 느껴지는 말투, 보이는 모습 같은 형식이기에, 형식이 의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형식이 품은 의미만큼 형식도 최대한 잘 갖추어야겠다.
둘째, 자신의 전문분야를 넘어서더라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머뭇거리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수학 정리를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지심리학 분야의 내용이 나왔다. 나온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장을 수학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으로 채웠다. 뜬금없다는 생각보다도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 분야를 넘어선 곳까지 지면을 아끼지 않고 설명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 책들은 모두 그랬던 것 같다. 융합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으니만큼 나도 융합 인재가 되어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책 제목 | 괴델, 에셔, 바흐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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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더글러스 호프스태더 |
읽은 날짜 | ~2019년 10월 29일 |
인터넷으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대해 찾아보던 중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을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보았다. 마침 그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보았지만 표지 디자인이 전근대적이어서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나무위키의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책은 꽤 재미있는 책이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수학체계에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는 정리이다. 이 책은 그 정리를 자세하고 알기 쉽게 다루는 책이다.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대화를 장 사이마다 넣어서 그 장에서 설명하는 내용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또한 에셔의 그림과 바흐의 음악을 계속 괴델의 수학에 접목시키는 점도 독특한 구조이다. 작곡이 그렇게 머리 아픈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또 하나의 파격적인 점은 책의 내용을 굳이 수학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과학의 내용도 서슴없이 끌어오면서, 괴델의 정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증명의 본질, 직접적으로는 지능과 정신의 원리를 이야기한다. 수학자가 그렇게 광범위한 분야를 끌어들여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괴델이나 호프스태더 중 적어도 한 명은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사실은 도서관에 화나는 점이다 —책이 (상)권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체로 인해 6일을 기다린 끝에 도서관에 갔는데 (하)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아하고 화내는 일이다.
결국 어제 장기도서관에 가서 같은 제목의 책을 빌려왔다. 거기에는 개역판이 있었는데, 상하편이 한 권으로 합쳐져 어마어마한 두께의 책이다. 그걸 모두 읽고 나면 감상문을 한 편 더 쓸 생각이지만 재미있는 책을 또 얻어와서 그걸 먼저 읽고 그 다음 괴델 에셔 바흐를 읽게 될 것 같다.
책 제목 | 괴델, 에셔, 바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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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더글러스 호프스태더 |
읽은 날짜 | ~2019년 10월 22일 ~ 11월 23일 |
극도로 길고 종잡을 수 없는 책이다. 페이지 수로는 1000쪽을 넘어간다. 괴델과 선과 지능에 관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모든 충분히 강력한 체계가 모순이거나 불완전하다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알고 싶었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모순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 답을 얻고자 이 책까지 흘러왔고 좋은 대답을 해준 것 같다. 내가 이 책이 스릴러를 읽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썼었는데, 실로 그랬던 것 같다. 특히 끝까지 주제를 잡지 못했던 점이 — 아니. 인정하지 못했던 건가? 사실 이러한 평가는 악평에 가깝다고 봐야겠다. 기괴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주제는, 저자가 20주년 기념 서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인공지능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공신경망이 인기 있어지기 전인 80년대에 쓰였다는 점을 생각하며 읽으면 굉장히 재밌다. 저자는 거듭해서 체스 인공지능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그것은 저자의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역자가 이에 대해 주를 달면서 그래도 바둑은 인공지능으로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이는데 이것도 이미 몇년전 일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두 혁신적인 인공지능이 모두 인간의 사고 '절차'를 모사했다기보다는 뇌의 물리적 '구조'를 모사했다는 점이다. 이 또한 궁극의 인공지능이 통상적인 프로그램과 같이 절차지향적일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배치된다. 이런 것을 보면 정말 이 세상의 본질이 변혁이 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어쩌면 또 갑자기 인공신경망을 뛰어넘는 새로운, 혹은 예전에 잊힌 이론이 인공지능의 강력한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살아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에 설렌다.
굉장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 책은 결코 괴델에 관한 책일 뿐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런 착각 속에서 읽는 것도 유쾌한 경험이었다. 한편으로 이 책은 근성의 힘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상권을 겨우겨우 읽어놓았더니 하권이 없어서 다른 도서관에 가서 합판본을 대출했다. 그리고 그 합판본을 읽고 있자니 세 가지 분량에 압도되었는데, 첫째는 내가 상권에서 읽은 분량이고, 둘째는 내가 합판본에서 읽은 분량이고, 셋째는 남은 분량이었다. 도저히 다 읽지 못할 것 같은 책이었지만 계속 읽다보면 진척이 되긴 한다는 게 어딘가 신기했다. 우리 모두 이 책의 존재를 교훈 삼아 인생을 근성으로 버텨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