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는 입학 전에 추천 도서 목록을 주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한다. 독후감을 걷어가서 읽어보긴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열심히 읽고 썼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방법서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기적 유전자 등을 읽었다. 이 때 즈음에 사피엔스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세 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냈더랬다. 아, 이기적 유전자는 다 못 읽고 포기했다가 나중에 읽었다. 이때 과학혁명의 구조도 읽으려다 포기했는데, 나중에 다시 도전해야겠다.
책 제목 | 사피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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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유발 하라리 |
읽은 날짜 | ~2018년 1월 1일 |
내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7년 여름 즈음 NIE 활동을 통해서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라는 책을 쓰고 한 인터뷰에 관한 기사였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과거에 대해서 썼고,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썼다고 한다. 왠지 읽고 싶은 책들이었다. 이 책들은 그냥 그렇게 기억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런 책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기에 다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생물학에도 연결을 시켜 서술한다. 크게 세 가지 혁명으로 역사를 설명하는데,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다. 인지혁명에서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호모 속의 유일한 종이 된 이유가 창작의 언어를 이용해 신화를 만드는 능력으로 서로 모르는 사람과도 단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천명이 단합할 수 있는 능력은 지구상 최강의 종이 되게 하였다. 농업혁명은 식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하여 인구가 늘어나게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수렵채집인이던 시절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게다가 되돌릴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저자는 농업혁명을 인류사 최대의 사기라고 말한다. 세번째 장에서는 가장 많은 인류가 신봉하는 신화인 돈, 종교, 제국에 대해 설명한다. 신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과학혁명은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했다. 무지를 인정한 사람들은 미래에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신용이라는 것이 커졌고 자본주의가 등장하였다. 과학의 호기심은 제국과도 결합하여 제국주의 시대를 이끌다가 핵무기 개발을 기점으로 끝을 맺었다. 저자는 이제 우리가 네번째 혁명을 맞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세상의 많은 것이 신화라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우리가 믿는 돈, 회사, 국가, 자유주의, 인권까지도 모두 신화다. 그 의미는 좀 더 생각해보아야겠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역사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도 충격이다. 역사는 작고도 우연한 사건으로 바귀곤 한다. 흥미롭고 새롭고 충격적인 것들을 많이 알게 한 책이다.
책 제목 | 방법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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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데카르트 |
읽은 날 | 2018년 1월 15일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말이다. 이 문장은 꽤 유명하여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 문장이 정말로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방학 추천 도서 목록에 데카르트가 지은 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게됐다. 방법서설을 읽으면서 데카르트가 한 말도 알아보고 하기로 했다.
방법서설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지 쓴 책이다. 데카르트는 여러 철학적 주장이 서로 대립하는 이유가 튼튼한 기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를 깨달은 데카르트는 자신이 직접 가장 기반이 되는 공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데카르트는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를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이 진리가 당장의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실에서 취해야 할 자세도 설명한다.
데카르트는 기하학에도 관심이 있었다. 철학과 기하학을 모두 공부한 데카르트는 철학도 기하학의 유클리드 공리처럼 가장 기본적이고 불변하는 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평소에 수학에서 공리와 정리의 그 논리적인 관계에 매력을 느끼는데 데카르트의 이런 생각을 읽으니 깊이 동의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데카르트는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 현실을 살기 위한 자세를 따로 제시한다.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을 무작정 추구하는 공자 같은 사람들의 의견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는데, 데카르트는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주었다.
데카르트가 나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것만은 아니다. 데카르트는 가장 명확한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하고 실제로 세상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한다.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세상이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이끌어내는데, 이 과정이 영 탐탁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인간이 스스로 신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믿어버린다. 이 부분은 나와 완전히 다른 의견이다. 뭐 어쩌면 종교 재판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난 방법서설이 주로 나의 존재에 대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이 책은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었다. 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고르라 하면 항상 수학을 골랐고 가장 싫어하는 과목을 고르라 하면 국어를 골랐다. 수학은 아주 논리정연한 과정만 거치면 유일한 답이 나왔다. 국어 같은 경우는 이렇다고 하면 이런 것 같고 저렇다고 하면 저런 것 같은, 애매모호한 과목이라고만 생각했다. 방법서설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내게 이런 애매모호해 보이는 문제도 적절한 논증으로 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나도 데카르트처럼 생각해보도록 해야겠다.
책의 단어나 문장은 좀 어려운 편이었다. 다른 책을 읽어보려다가 추천도서목록의 책은 이거나 저거나 문장이 어려운 것은 비슷한 것 같아 짧아 보이는 것부터 시도해보기로 했다. 각각의 문장은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줄거리는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책들도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격려가 되었다.
책 제목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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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도스토예프스키 |
읽은 날 | 2018년 1월 8일 ~ 2018년 1월 26일 |
이 책을 읽기 며칠전 죄와 벌이란 책을 읽었다. 초인사상에 물든 러시아 청년이 살인을 저지르는 내용인데 전개나 표현이나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그 책의 뒤쪽에 해설이 있었는데 죄와 벌의 저자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라는 걸작을 썼다고 쓰여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추천도서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하였다.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을 보았는데 너무 두꺼워 읽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나 이런 책은 방학이 아니면 못 읽겠지 싶어 꾸준히 읽어보기로 했다.
카라마조프가는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이하 알료샤)로 이루어진다. 드미트리와 아버지는 연적인 데다 돈 문제도 있어 깊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살해되고 돈도 강도맞는 사건이 일어난다. 드미트리는 아버지와 문제가 많았던데다 온갖 증거들도 드미트리의 목을 조여온다.
아버지와 아들의 추잡한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알료샤의 수도원 이야기와, 스네기료프 퇴역대위와 아들 일류세치카(이하 일류샤)의 이야기도 병행한다. 수도원의 조시마 장로가 고해성사를 받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기서 조시마 장로가 해주는 말들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일류샤 이야기에서 나온다. 일류샤는 모욕을 당한 아버지를 놀리는 반 아이들에게 대항하다가 돌팔매질을 맞고 앓아눕는다. 알료샤는 일류샤가 반 아이들과 화해하도록 도와주는데, 딱 한 명 콜랴는 일류샤에게 방문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틴다. 콜랴는 결국 몇 주가 지나서야 방문하는데, 그 때까지 버틴 이유가 일류샤가 잃어버린 개를 찾아서 훈련하여 일류샤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콜랴는 개의 묘기를 보여주면서 일류샤와 웃고 울고 껴안는데 읽고있자니 내 눈이 촉촉해졌다. 온갖 어른스러운 척은 다하던 콜랴가 순수하게 껴안으니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작중 조시마 장로의 말은 내가 종교의 역할을 알게 해주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신학토론도 좀 지루하긴 해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난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종교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깊이 믿게 되었다. 모두가 신을 믿던 시절도 꽤 괜찮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죄와 벌처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총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기 전에는 한 권만 읽을까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그런데 이걸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긴 이야기도 쭉 흥미진진하게 풀 수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
저자 도스토예프스키는 원래 이 이야기를 2부작으로 기획했다. 실제로 작중에도 계속 다음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책을 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스토예프스키는 세상을 떠났다. 대문호가 이어지는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버리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벌써 저 글을 쓴 때로부터 2년 반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을 뜬 게 슬프다고 썼었는데, 이런 시국이 되다 보니 지금 살아있는 작가들도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최근 내가 모으고 있는 시리즈가 있는데 그 작가가 일본인이다. 일본에서 전염병이 특히 더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데, 모쪼록 잘 살아남아 창작을 계속 해주었으면 한다.
저때에 제법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기록이 남은 것은 저 세 권뿐이다. 저것 외에도 감정수업 같은 것도 읽었는데 나중에 한번 노트를 싹 다 찾아봐야겠다. 실은 사피엔스 서평만 어쩐 이유인지 컴퓨터에 저장이 안 되어있어서 오랜만에 타자연습 좀 했다.